감성이의 끄적임

담비가 보고싶을 때 읽는 글

노르웨이펭귄🐧 2019. 11. 23. 03:36






사진 정리하다가 발견한 담비 사진.


2017년 4월 9일 아침에 내 동생이 찍어서 보내줬던 사진.

그리고 담비는 그 날 저녁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.




세상에서 제일 예쁜 강아지인 담비는 생후 4개월쯤에 우리 가족에게로 왔고, 14년을 같이 지냈다.


담비는 예쁘기도 엄청 예뻤지만 무지 똑똑했다.

그리고 또 엄청 건강해서 항상 밥도 잘 먹고 병원에 갈 일도 없이 튼튼하게 잘 자랐다.




근데 담비가 열 다섯살이 되었을 때부터 기운이 없어보이기 시작했다.


나는 이 때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을 때라 잘 몰랐는데,

엄마는 담비가 자주 아프다고.. 곧 우리를 떠날 때가 된 것 같다고 한 달에 한 번 꼴로 얘기했다.


엄마가 그렇게 얘기할 때마다 그런 얘기 하지도 말라고,

우리 담비가 어떤 강아진데! 담비는 5년은 더 건강하게 잘 살거라고 그렇게 대답했었다.





그리고 어느 주말, 집에 내려갔을 때 처음으로 아픈 담비의 모습을 직접 내 눈으로 봤다.

거실에서 멀쩡하게 걷다가 갑자기 몸에 마비가 온 것처럼 다리를 못 가누더니 쿵- 하고 쓰러졌다.


너무 놀라서,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 "담비야, 담비야" 이름만 자꾸 부르면서 울기만 했다.

엄마가 얼른 와서 담비를 안아주고 만져주니 담비가 곧 정신을 차렸지만

엄마는 이런 일이 한 달에 한 번씩은 있다고 했다. 그 말에 억장이 무너졌다.



나에게 담비는 평생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할 것 같은 강아지였다.

중학생이었던 내가 20대 후반이 된 14년 동안 담비도 같이 시간을 보낸 것인데...


강아지는 사람보다 더 빨리 늙는다는 것을, 더 빨리 떠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.





병원에서는 담비가 노견이라 수술을 하는 것 자체가 생명에 지장을 줄 수도 있다고 했다.

수술이 성공할지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.


결국 수술은 못하고 약이랑 영양제만 받아와서 밥에 섞어주는 걸로 대신했지만,

담비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토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.


사람이 오면 문 앞에서 힘차게 꼬리흔들며 앉아있었던 담비는

이름을 불러도 침대에 엎드린 채로 꼬리만 겨우 흔들어댔다.


배도 부풀어 오르고, 부푼 배로 숨도 거칠게 쉬기 시작했다.




엄마는 담비를 볼 때마다 "담비야, 이제 괜찮으니까 가도 돼"라고 말을 해줬는데,

나는 담비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 힘들어서

내 이기적인 마음에 담비가 더 버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.


게다가 나는 한 달 뒤에, 3개월 동안의 유럽여행을 앞두고 있었기에 더 두려웠다.

내가 집에 돌아오면 담비가 더이상 이 집에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 너무 강하게 느껴졌다.




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, 자고 일어나니 내 옆에서 조용히 자고 있는 담비가 보였다.


원래 담비는 도도해서 함께한 14년동안 내 옆에서 잔 경우는 손에 꼽히는데,

그 중 하루가 내가 떠나던 날이자 우리가 함께한 마지막 날의 아침이었다.


숨을 거칠게 쉬며 내 옆에 누워있는 담비를 보니 아침부터 눈물이 났다.



그런 담비를 안고 "담비야, 언니 갔다올테니까 갔다와서 꼭 다시 보자."라고 백 번은 얘기한 것 같다.

말은 그렇게 하면서도 마지막일 것 같은 담비의 모습을 동영상에 계속 담았다.





그리고 내가 한국을 떠난지 17일 뒤,

나는 지금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편을 만났고, 내가 가장 사랑했던 담비는 우리를 떠났다.



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남편을 처음 만난 그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.


그래서 누가 나에게 남편과 처음 만난 날에 대해 
물어보면

담비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 눈물이 날 것 같아서 대충 얼버무린다.



어디가 어떻게 얼만큼 아프다고 말도 못하는 담비가 이기적인 나 때문에 마지막까지 얼마나 힘들었을까.

마지막에 찍은 사진들을 보면 귀여운 담비의 얼굴보다는 부푼 배가 먼저 눈에 들어와서 마음이 아프다.




자기가 떠날 것을 두려워했던 언니를 위해, 담비가 떠나면서 남편을 만나게 해준 것 같다.

자기없이 단 하루도 외롭지말라고, 마지막까지 착했던 담비가.

마지막까지 이기적이었던 내 생각을 해준 것 같아서 더 고맙고 미안하다.


이 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나니까, 아직까지는 고마운 마음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훨씬 더 큰 것 같다.

그래도 담비처럼 예쁘고 사랑스럽고 똑똑한 강아지와 함께한 14년은 참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.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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