감성이의 끄적임

시간이 흐른 뒤 나중에 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지금과 다른 기분이길 희망하며 쓰는 글

노르웨이펭귄🐧 2018. 12. 6. 13:36






2018년 12월 6일 목요일.


시간이 흐른 뒤 나중에 이 글을 다시 읽었을 때 지금과 다른 기분이길 희망하며 쓰는 글.







만 27년 넘게 살아왔던 한국에서, 그만큼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많았던 한국을 떠나려니 참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든다.

사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라고 하기에는 지금은... 슬픈 감정이 압도적이다.


낯선 장소로 이사간다는 것이 처음이 아닌데도, 3년 반이 넘게 혼자 자취를 하고 있는 나인데도, 이번엔 이렇게 다를 줄 몰랐던 것 같다.






8개의 큰 상자를 꽉꽉 채워 우체국까지 옮겨 노르웨이로 택배를 보낼 때에도,

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겠다며 이것저것 결혼 준비 리스트를 체크하던 때에도,

결혼준비비자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내가 왜 이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지 확신을 가졌던 때에도,

비자가 승인됐던 때에도 나는 그저 기뻤다.


드디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구나. 지긋지긋한 공항 작별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..





그 땐 잘 몰랐지. 바군과는 더 이상 작별하지 않아도 되지만, 그 외에 모든 사람들과는 작별을 해야한다는 것을.


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을 D-day 걸어놓고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던 나였는데, 요즘에는 그 날짜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.

아직 27년밖에 살아보지 못한 짧은 인생이고, 노르웨이에서 더 긴 시간을 살게 될 수도 있는데 그 짧은 기간의 추억들이 너무 많아 쉽게 떠나기가 어렵다.





사실 한국에서 힘든 일들이 참 많았으니 떠나도 많이 그립거나 슬프지 않을 것이라고 생각했다.


다들 4년제 대학교는 나오니 나도 4년제 대학교에 진학 했고, 나에게 너무 벅찼던 등록금으로 인해 스무살 때 부터 시작된 대출.

더 전문적인 직업을 갖겠다며 1년 동안 돈도 받지 못하고 인턴기간을 거치고 드디어 일을 시작했지만 어마어마한 업무량과 불안정한 근무환경.

첫 직장이니 '다들 이렇게 사는 거겠지.' 생각하며 일했는데 갑자기 맞닥뜨린 파업. 그리고 폐쇄된 회사.

그렇게 내가 처음으로 맞은(강제적으로 맞은) 휴식기간이었지만,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전혀 휴식하지 못하던 그 시기에 어렵게 떠나게 된 노르웨이 행.

그리고 그 낯선 곳에서 내 인생의 짝꿍을 만나 이렇게 상황이 흘러왔다.




객관적으로 봤을 땐 참 행복하지 않은 일들이 많았는데, 내 복이 다 인복으로 왔는지 좋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 이렇게 한국을 떠나는 것이 슬픈 것 같다.


첫 직장에서 힘들게 일했지만, 그 곳에서 지금 나에게 둘 도 없는 소중한 친구를 만났다.

파업기간과 이후 휴식기간동안 몸도,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마음도 참 많이 힘들었는데 주변 사람들의 응원으로 힘이 많이 났다.

힘든 시기에 어렵게 떠난 유럽여행에서 바군을 만났다.

인턴기간으로 인해 남들보다 1년 늦게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, 그 경력으로 인해 유럽 여행 후 금방 직업을 구할 수 있었다.

그리고 이 직장에서는 내가 2주간 노르웨이를 방문해도 눈치주지 않았고, 퇴사할 때에도 내가 출국하는 날짜에 맞춰 모든 일정을 다 조정해주셨다.

그렇게 유럽 여행 후 돌아오고 나서도 남아있던 학자금 대출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퇴사할 수 있었다.

그리고 가장 감사하게도, 내가 이제 한국을 떠난다고 하니 일부러 시간 만들어서 나를 만나려는 사람들이 정말 너무 많다.



힘들 때 누가 내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 하는데, 지금 힘든 나에게 내 사람들이 너무 많은 사랑을 주고 있어서 떠나기가 더 슬프다.

이 사람들은 내가 힘들 때 멀리서 달려와주고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줬는데,

이제 나는 이 사람들이 힘들 때 그렇게 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참 슬프다.

이 사람들의 생일을 제대로 챙겨줄 수 없고, 경조사도 챙길 수 없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참 슬프다.







이런저런 감정으로 계속 우울모드를 달리고 있으니,

바군이 "다음 주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.", "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어!" 등의 이야기를 하면

난 시간이 좀 더 느리게 가면 좋겠는데..하며 더 우울해지고 ㅠㅠ




그래서 어제 바군에게


"미안하지만 나는 요즘 시간이 빨리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.

노르웨이로 가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후회한다는 것이 아니라,

한국에 있는 내 소중한 사람들을 떠난다는 것이 지금 당장은 너무 힘들고 그 마음이 널 빨리 보고 싶은 마음보다 더 크다는 말이야."


라고 내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를 나누었다.







우리 바군이 로맨틱하지는 못하지만 ㅎㅎ

속이 깊고 이해심이 있는 사람이다보니 내 마음을 잘 이해해줘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런 다정한 카톡을 남겨놨다.


바군의 말대로 나중에 이 날들을 회상 했을 때 행복한 날들로 기억할 수 있도록, 이제 마음을 단디 잡아야겠다. :)